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革命音楽館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울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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限りなく大きな度量と高邁な風貌に魅せられて

주체104(2015)년 5월 3일 로동신문

한없이 넓은 도량과 고매한 풍모에 매혹되여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조선혁명뿐아니라 세계혁명앞에 쌓으신 불멸의 공적으로 하여 세계가 한결같이 공인하는 희세의 정치원로,인류의 대성인이시다.
절세의 위인에 대한 칭송의 목소리는 이 행성을 진감시킨다.
우리 나라와 국교관계가 없는 일본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매혹과 흠모의 목소리가 끝없이 울려나왔다.
인류자주위업과 조일관계개선에 불면불휴의 로고를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일본 각계의 수많은 인사들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뜨거운 감회속에 되새겨본다.

소탈한 인품과 다심한 인정에 끌리여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해방직후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접견하여주신 일본의 정계,사회계,언론계,개별인사들은 1 000여명을 헤아린다.우리 수령님께서 해방직후 제일 처음으로 만나주신 일본의 인사들중에는 노사까 산조도 있다.
노사까 산조는 일본공산당 대표로서 오래동안 국제공산당에 파견되여 사업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중국 연안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위해 적극 투쟁한 사람이였다.
그가 우리 나라에 온것은 해방직후였다.해방의 기쁨안고 모두가 떨쳐나 건국열의로 들끓는 조선인민의 투쟁모습에서 그가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커다란 감동속에 노사까 산조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은 력사의 그날은 주체34(1945)년12월 21일이였다.
그는 우리 수령님을 일제의 100만대군과 맞서싸우신 명성높은 장군으로 높이 칭송하며 그이께 인사를 올리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분한 평가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위하여 굴함없이 싸워온 노사까 산조를 비롯한 일본인사들의 투쟁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앞으로 일본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조일량국 인민들간의 친선관계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공산당을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대중적당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그의 결심도 적극 지지해주시였다.자기 나라로 무사히 귀국할수 있도록 해당한 조치도 취해주시고 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도 하나하나 헤아려주시는 김일성장군님의 소탈한 인품과 다심한 인정에 끌리여 노사까 산조는 우리 수령님앞에서 다진 맹세대로 한생을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반대하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투쟁하였을뿐아니라 재일조선인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옹호하는 련대성운동을 적극 벌리였다.

천금같은 귀중한 시간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해방직후 새 조선건설의 그 바쁘신 속에서 만나주신 일본의 인사들중에는 일조농업기술교류협회 회장이였던 가네가쯔 노보루도 있다.
강도 일제가 패망한 뒤 우리 나라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남아있었다.
일본에서는 이들의 귀환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사회단체들과 인사들의 운동이 진행되고있었다.당시 《재외부형구출학생동맹》의 한 성원이였던 가네가쯔는 이 귀환운동에 참가하면서 점차 조선에 가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자기의 소청을 말씀드릴 용단까지 내리게 되였다.그가 이러한 용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마음속고민이 컸다.조선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씻을수 없는 원한만을 남긴 과거 일제의 죄행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그였기때문이다.조선에서 자기의 소청이 이루어지겠는지,더우기 백두산의 호랑이로 명성을 떨치신 김일성장군께서 자기를 어떻게 대해주실가 하는 위구심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간난신고하여 38˚선을 넘어온 가네가쯔는 큰 충격을 받았다.해방직후 우리 나라에서 일본인들에게 식량을 공급해주고있는 사실을 목격하였기때문이다.
그가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온 그날은 주체35(1946)년 6월 3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렵고 복잡한 시기에 일본에서 먼길을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고 그를 따뜻이 위로해주시며 그의 소청을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안고있는 위구심도 풀어주시며 조선인민은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악독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일본제국주의통치배를 반대하지 결코 일본인민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일깨워주시였다.그러시면서 우리 인민은 재일동포들의 귀국을 실현하지 못한 불행을 안고있는것만큼 북반부지역에 남아있는 일본인들의 고통을 리해하고있으며 그들의 귀국실현을 도와주려고 한다는데 대하여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가네가쯔가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온 시간은 불과 15분가량이였다.그러나 그에게는 이 시간이 천금같은 귀중한 시간으로 되였다.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그는 저도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머금으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격정을 터치였다.
(어쩌면 인품이 그처럼 높으실가.어쩌면 그리도 따뜻하실가.)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가네가쯔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은 그후 수많은 일본인들의 귀환이 시작되고 자기가 일본으로 무사히 귀국할수 있도록 온갖 조치가 취해지는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무한대한 포옹력,고매한 풍모와 높은 덕망에 매혹된 가네가쯔는 우리 수령님의 접견을 받은 후부터 사상과 정견을 초월하여 조선인민의 투쟁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으로 되였으며 일조농업기술교류협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조일관계개선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본사기자 김철룡



主体104(2015)年5月3日 労働新聞
限りなく大きな度量と高邁な風貌に魅せられて

偉大な金日成同志は朝鮮革命のみならず、世界革命の前に積まれた不滅の功績によって世界が一様に公認する稀世の政治元老、人類の大聖人であられる。
絶世の偉人に対する賞賛の声はこの惑星を震撼させる。
我が国と国交関係がない日本においても、偉大な首領様に魅せられた者の敬慕の声が途切れることなく鳴り響いた。
人類自主偉業と朝日関係改善に不眠不休の労苦を全て捧げられた偉大な首領様に対する日本各界の数多き人士らの果てしない欽慕の情について熱く感懐を刻んでみる。

気さくな人柄とあまりある人情に惹かれて

偉大な金日成同志が解放直後より生涯の最後まで接見なさった日本の政界、社会界、言論界、個別人士らは1000余名を数える。我が首領様が解放直後、一番初めにお会いになった日本の人士らの中には野坂参三もいる。
野坂参三は日本共産党代表として長らく国際共産党に派遣されて事業を進め、第二次世界大戦時期には中国延安において戦争に反対し、平和の為に積極的に闘争した人であった。
彼が我が国に来たのは解放直後であった。解放の喜びを抱いてみなが勇み出て、建国の熱意に沸く朝鮮人民の闘争する姿から彼が受けた衝撃は非常に大きかった。
大きな感動のうちに野坂参三が偉大な首領様にお会いし、教えを受けた歴史のその日は主体34(1945)年12月21日であった。
彼は我が首領様を日帝の百万大軍に向かって戦われた名声高き将軍として高く称賛しながら、首領様にあいさつを捧げた。偉大な首領様は身に余る評価だと謙遜しながらお話になりながら、戦争に反対し平和の為に屈することなく戦ってきた野坂参三を始めとする日本人士らの闘争を高く評価なさった。そうおっしゃりながら、首領様はこれから日本の民主化を実現し、朝日両国人民の親善関係発展の為に努力し、共産党を国と人民の為に服務する大衆的党として発展させてゆくという彼の決心も積極的に支持なさった。自国へと無事に帰国できるよう相応の措置も施され、事業より提起される問題もみて下さる金日成将軍様の気さくな人柄とあまりある人情に惹かれ、野坂参三は我が首領様に立てた誓いの通り、一生を米帝の新たな戦争挑発策動に反対し、世界の平和を守護する為に闘争しただけでなく、在日朝鮮人らの民主主義的民族権利を擁護する連帯性運動を積極的に繰り広げた。

千金のような貴重な時間

偉大な金日成同志が解放直後、新朝鮮建設のお忙しいなかお会いになった日本の人士らの中には日朝農業技術交流協会会長であったカネガツ・ノボルもいる。
強盗日帝が敗亡した後、我が国には多くの日本人らが残っていた。
日本では彼らの帰還を実現する為、あらゆる社会団体と人士らの運動が行われていた。当時「在外父兄救出学生同盟」の一成員であったカネガツはこの帰還運動に参加しながら、次第に朝鮮に行き、金日成将軍様にお会いして、自分の訴願を申し上げる勇断下すようにまでなった。彼がこのような勇断を下す前までは悩みがあった。朝鮮人民に推し量ることのできない不幸と拭いさることのできない恨みだけを残した過去の日帝の罪業に対しよく知っている彼だからであった。朝鮮で自分の訴願が実現するのだろうか、また白頭山の虎として名声を轟かされた金日成将軍様が自分をどう応じてくださるだろうか、という疑念が彼の頭から離れなかった。
艱難辛苦を経て38度線を越えてきたカネガツは大きな衝撃を受けた。解放直後、我が国において日本人らに食糧を配給している事実を目撃したからであった。
彼が金日成将軍様に直接お会いしたその日は主体35(1946)年6月3日であった。
偉大な首領様は難しく複雑な時期に日本から遠い道を来て苦労しただろうと、彼をあたたかく慰労してくださり、彼の訴願を最後まで全て聞いて下さった。偉大な首領様は彼が抱いている疑念も解いて下さり、朝鮮人民は我が国を強占し、悪徳な植民地統治を実施した日本帝国主義統治輩を反対するのであって、決して日本人民自体に反対するのではないと諭して下さった。そうおっしゃりながら、我が人民は在日同胞の帰国を実現できなかった不幸を抱いているだけに、北半部地域に残っている日本人らの苦痛を理解しており、彼らの帰国実現を助けようとしていることについて熱くお話になった。
カネガツは金日成将軍様にお会いした時間はわずか15分程であった。しかし彼にとってはこの時間は千金のような貴重な時間となった。
金日成将軍様にお会いして、彼は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熱い涙を浮かべながら心の中でこのように激情を燃やした。
「どうして人柄があの方のように素晴らしくなるのだろう。どうしてあれほどまでに暖かくなるのだろう。」
父なる首領様に対するカネガツの限りなき欽慕の情はその後、数多くの日本人らの帰還が始まり、自分が日本に無事に帰国できるようにあらゆる措置が施されるのを直接体験しながら絶頂に達した。
父なる首領様の限りなく大きな度量と無限大の包容力、高邁な風貌と高い徳望に魅せられたカネガツは我が首領様の接見を受けてからというもの、思想と政見を超越して朝鮮人民の闘争を熱烈に支持する人になり、日朝農業技術交流協会会長として働きながら、朝日関係改善の為、己の全てを捧げたのであった。

本社記者 キム・チョルリョン

-参考-

限りなく大きな度量と高邁な風貌に魅せられて(한없이 넓은 도량과 고매한 풍모에 매혹되여)
労働新聞(로동신문) 2015年5月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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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人々が見た朝鮮の抗日戦争

《로동신문》 주체101(2012)년 8월 15일 수요일
일본사람들이 본 조선의 항일전쟁

◇ 지리에 밝아서 신출귀몰

《당시의 조선총독부기관지 〈경성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
새로운 전법과 무기를 가진 김일성의 인기는 압록강일대를 세력권으로 하여 드디여… 완전히 일본,만저우(만주),조선토벌대의 암으로 되고있다.토벌대는 한번도 김일성유격대의 기본부대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였다.
이 사실은 일,만 량군이 다 지리를 잘 모르는데다가 가는 곳마다 밀정들이 있어 정확한 정보는 김일성유격대의 수중에 들어가기때문에 토벌대의 고심은 오늘까지 수포로 돌아가고말았다.〉
김일성〉이란 존함은 이와 같은 신문보도로 하여 전설처럼 일본인들속에 알려져갔다.》

◇ 유격전의 심리학

《조선주둔군 라남제19사단소속 함흥제74련대의 2 000여명을 출동시키고 여기에 창바이(장백)주둔 위만군혼성려단의 500여명을 합류시키기로 하였다.
600명의 항일유격대의 활동을 제압하기 위하여 4배나 되는 정규군이 동원되여서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것은 군사상식으로써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

김일성사령관께서는 〈600 더하기 유격대원들의 사기 및 인민들의 전면적인 지지,2 500 덜기 적병사들의 염전사상 및 국경지대주민들의 반일감정〉을 타산하시였다.
이것은 그이께서 내놓으신 하나의 공식이였다.

이 전투(지엔싼봉)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대토벌〉을 꿈꾸던 함흥제74련대의 유생력량 1 500여명을 살상하였다.》

◇ 조선인민의 독립념원에 공감한 일본사람

《…1937년부터 1939년까지사이에 만저우토목회사 림업부에 적을 두었던 구스노기 다까오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그때 나는 김일성장군님의 소문을 자주 들었습니다. … 례를 들면 창바이에는 당시 일본군수비대가 주둔하였는데 그들이 종종 김일성장군님유격대의 습격을 받아 참패당한 이야기,김사령의 전술이 교묘하며 아무리 해도 이길수 없었다는 말들이 수시로 들려왔습니다.
… 우리 농장에도 파두(조책임자)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 조책임자들이 밤이 되면 물품을 마차에 싣고 어데로인지 나르는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 만약 발각되면 총살당한다는것은 뻔한 일인데 목숨을 걸고 실어내는 그 열성에는 김사령에 대한 조선민중의 끝없는 경모의 정과 독립을 위한 념원이 깃들어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 조선인민은 김일성장군을 태양으로 우러러보고있다

《일본 시즈오까현에 사는 요꼬야마 다다오는 보천보전투가 있은 당시 혜산시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있었다.그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의 일이며 보천보전투 등에 대하여 〈조선시보〉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5개월간의 군사훈련을 받은 다음 1936년 9월부터 혜산시의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 나는 같이 교편을 잡고있던 한 조선인교원과 아주 친숙하게 지냈다. … 나는 그날 밤 그의 하숙집에 찾아가 한잔 마시면서 세상이야기로 꽃을 피우고있었다.그런데 그는 갑자기 나의 귀에 손을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이였다.
… 지금 압록강대안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항일유격대는 모두 김일성이라는 젊은 조선청년공산주의자가 령도하고있지요.김일성장군은 몇년전부터 만저우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고있는데 일만군경이 여러번 토벌작전을 벌렸으나 맥을 못쓰고 언제나 대타격을 받고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조선사람들은 김일성장군을 존경하며 민족의 태양으로 우러러보고있지요.〉》

※  ※

이상의 내용은 일본 《요미우리신붕》 이전 론설위원이며 일조문화교류협회 리사장이였던 다까기 다께오가 고령의 나이에 쓴 2부로 된 책 《백두산에 타오르다》의 일부이다.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알고 조선인민의 불굴의 혁명정신에 대하여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초기혁명활동력사와 그이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이룩된 불멸의 업적을 깊이 알아야 한다는것이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다.
이 책의 집필과 관련하여 그는 깊은 책임감을 느끼였다.
한것은 일찌기 《요미우리신붕》 창춘(장춘)특파원으로 있던 때에 일제의 《토벌대》를 따라다니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작전지역을 직접 취재한바가 있었기때문이다.그때 그는 유격대의 흔적을 따라 베이만(북만)의 여러 일대를 다니면서 많은 자료들을 알게 되였지만 세상에 발표하지 못한채 그대로 묻어두었었다.
하여 그는 당시의 사실을 직접 취재한 사람으로서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량심과 의무를 다하고저 이 글을 써내게 되였다.
그는 40여년간의 기자생활과 대담하게 결별하고 일조문화교류협회 발기인의 한사람이 되여 리사장의 중책을 맡고 조선과 일본사이의 문화교류발전에 큰 자욱을 남기였다.
이러한 다까기 다께오는 우리 나라를 방문하는 과정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접견을 여러차례나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를 원형으로 한 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를 1980년대에 내놓았으며 2009년과 2010년에는 5부까지에 이르는 련속편들을 제작상영하였다.

본사기자 오철훈



「労働新聞」 主体101(2012)年8月15日水曜日
日本の人々が見た朝鮮の抗日戦争

◇地理に明るく神出鬼没

「当時の朝鮮総督府機関紙、「京城日報」には次のような記事が載せられた。
『…新しい戦法と武器を持った金日成の人気は鴨緑江一帯を勢力圏としていよいよ… 完全に日本、満洲、朝鮮討伐隊の癌となっている。討伐隊は一度も金日成遊撃隊の基本部隊と正面から向かうことが出来なかった。
この事実は、日、満両軍が皆地理をよく知らない上、行く先々に密偵らが居て、正確な情報は金日成遊撃隊の手中に入るために討伐隊の苦心は今日まで水の泡となってしまった。』
金日成という尊名はこのような新聞報道として伝説のように日本人らへと知れ渡っていった。」

◇遊撃戦の心理学

《朝鮮駐屯軍羅南第19師団所属咸興第74連隊の2000余名を出動させ、ここに長白駐屯偽満洲軍混成旅団の500余名を合流させることとした。
600名の抗日遊撃隊の活動を制圧する為に4倍にも及ぶ正規軍が動員されても目的を達成できないということは、軍事常識としては到底考えられないことだ。

金日成司令官におかれては、『600足す遊撃隊員らの士気及び人民の全面的な支持、2500引く敵兵士らの厭戦思想及び国境地帯住民らの反日感情』を打算なされた。
これは彼の出された一つの公式だった。


◇朝鮮人民の独立の念願に共感した日本人

「…1937年より1939年までの間に満洲土木会社林業部に籍を置いたクスノキ・タカオは次のように回想した。
『その時、私は金日成将軍様の噂をよく聞きました。…例を上げれば長白には当時、日本軍守備隊が駐屯したのに、彼らがしばしば金日成将軍様の襲撃を受け惨敗を喫した話、金司令の戦術が巧妙でどうしても勝てなかったという数々の話が随時、聞こえてきました。
…私達の農場にもパドゥ(組責任者)という、そのような人が居ました。…組責任者らが夜になると物品を馬車に載せ、何処かへ運ぶのを私は見ました。…もし発覚すれば銃殺されるということは明らかなことなのに生命を懸けて積み出すその熱情には金司令に対する朝鮮民衆の限りなき敬慕の情と独立の為の念願が込められていました。
当時、私は…知っていてもそのまま放っておきました。』」

◇朝鮮人民は金日成将軍を太陽として仰ぎ見ている

「日本、静岡県に住むヨコヤマ・タダオは普天堡戦闘があった当時の恵山市にて普通学校の教員として働いていた。彼は金日成将軍様に関する話を始めて聞いた時のことであり、普天堡戦闘などに関して「朝鮮時報」記者に次のように語った。
『私は平壌師範学校を卒業し、5ヶ月間の軍事訓練を受けた後、1936年9月より恵山市の普通学校にて教鞭を執った。
…私は同じ教鞭を採っていた一人の朝鮮人教員と非常に親しくしていた。…私はその日の夜、彼の下宿先に訪ねて行き、一杯呑みながら世間話に花を咲かせていた。ところが彼は急に私の耳に手を添えて小さな声で囁いた。
…今、鴨緑江対岸一帯にて活動している抗日遊撃隊は皆、金日成という若い朝鮮青年共産主義者が領導しているんですよ。金日成将軍は何年か前から満洲一帯にて抗日武装闘争の旗標を高く掲げているんですが、日満軍警が何回も討伐作戦を繰り広げても甲斐なくいつも大打撃を受けているようです。
我等朝鮮人らは金日成将軍を尊敬し、民族の太陽と仰ぎ見ています。』」

※  ※

以上の内容は日本、「読売新聞」の元論説委員であり、日朝文化交流協会理事長だった高木健夫が高齢な時に書いた二部で成る本、「白頭山に燃える」の一部だ。
永生不滅の主体思想を知り、朝鮮人民の不屈の革命精神を知るためには必ず偉大な首領、金日成同志の初期革命活動史と彼が組織領導なされた抗日武装闘争期に成し遂げられた不滅の業績を深く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が、彼がこの本を書いた動機だ。
この本の執筆と関連し、彼は深い責任感を感じた。
なぜなら、かつて「読売新聞」長春特派員として働いていた時に日帝の「討伐隊」に付いて歩き、朝鮮人民革命軍の作戦地域を直接取材したことがあるからだ。その時、彼は遊撃隊の痕跡に付いて行き、北満の様々な場所の一帯を歩き多くの資料を知るようになったが、世に発表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そのまま隠していた。
そして彼は当時の事実を直接取材した人として時代と歴史の前に負った良心と義務を果たそうとこの文を書くようになった。
彼は40余年間の記者生活と大胆に決別し、日朝文化交流協会発起人の一人となり、理事長の重責を担い、朝鮮と日本との間の文化交流発展に大きな跡を残した。
このような人物である高木健夫は、我が国を訪問する過程で偉大な首領、金日成同志の接見を何度も受けるという栄光を受けた。
我が国においては彼は原型とした芸術映画、「私の見た国」を1980年台に作り、2009年と2010年には5部に至る連続編を制作、上映した。

本社記者 オ・チョルフン

※"組責任者"を意味するという"파두(パドゥ)"が何なのか、どういう漢字を書くのかがわかりませんでした。もしわかる方がいれば、教えてくだされば嬉しいです。

-解説-

高木健夫とは読売新聞の記者であった著名な親北朝鮮人士で、主に番町書房刊「金日成物語 領導の芸術家」、今回この記事で取り上げられている現代史出版会刊「白頭山に燃える」とその続編、二月社刊「金日成満州戦記」等で知られる。
この記事は主に「白頭山に燃える」からの引用だと書かれているが、「白頭山に燃える」は朝鮮時報で高木氏が最晩年に執筆した連載「白頭に燃える」を書籍化したものである。続編として「金日成満州戦記」として発刊された。

-参考-

日本の人々が見た朝鮮の抗日戦争(일본사람들이 본 조선의 항일전쟁)
労働新聞(로동신문) 2012年8月15日

〈生誕100年 金日成主席を追憶して3〉「革命の雄大な叙事詩」描いて
朝鮮新報 2012年3月1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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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ナス管弦楽団の音楽才子ら

《로동신문》 주체101(2012)년 3월 16일 금요일
은하수관현악단의 음악재사들

◇ 단장 장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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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 인민의 사랑을 받는 은하수관현악단의 단장은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인민예술가인 장조일이다.
올해 60살인 그는 우리 나라 음악예술계에 알려진 관록있는 작곡가들중의 한사람이다.1980년에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당시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 그는 여러 예술단체들에서 창조활동을 하다가 1994년부터 영화 및 방송음악단(당시)의 작곡가로 일하였다.
2008년 가요 《눈이 내린다》를 관현악과 합창형식의 새 세기 명작으로 창작형상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장조일은 만수대예술단 작곡가로서 《예쁜이》,《젊은 기관사》와 같은 인민의 사랑을 받는 노래들을 관현악으로 훌륭히 편곡형상하였으며 1950년대에 창작된 전형적인 조선민요 《그네뛰는 처녀》도 민족음악의 특색과 정서가 넘치는 관현악으로 완성하여 내놓았다.
그는 지난해 2011년 7월 27일에 발표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상을 수여받았다.

◇ 30대의 쟁쟁한 지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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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명일, 윤범주

은하수관현악단에는 30대의 열정넘치는 지휘자들이 있다.
지난해 33살의 젊은 나이에 공훈예술가의 칭호를 지닌 리명일은 20살때에 벌써 오늘의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피아노학과를 졸업한 음악수재이다.
오스트리아 윈음악예술종합대학에서 지휘공부를 하였다.그는 주체섬유 비날론을 발명한 세계적인 화학자의 손자이기도 하다.
은하수관현악단 지휘자 겸 작곡가인 윤범주는 2007년에 오스트리아 윈음악예술종합대학 지휘학부를 졸업하였다.
어려서부터 예술과 인연을 맺고 군사복무의 나날에도 음악적재능을 부단히 련마해온 그는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손길아래 은하수관현악단에서 재능을 활짝 꽃피우고있는 자신의 오늘에 대하여 무한한 긍지를 가지고있다.
쟁쟁한 음악인재로 인정받고있는 그는 올해 38살이다.

◇ 청춘악단의 31살 난 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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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악단으로 불리우는 은하수관현악단의 악장인 문경진은 1981년생이다.특출한 예술적공훈을 세운 무대예술인들에게 수여되는 인민배우칭호를 그는 30살 되던 지난해에 받았다.
19살에 지금의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을 졸업한 그는 2002년 제12차 《2.16예술상》개인경연에서 2등을 하였다.
로씨야 챠이꼽스끼명칭 모스크바국립음악대학에서 실습하는 기간 그는 2005년 11월에 진행된 빠가니니명칭 제3차 모스크바국제콩클에서 2등을 쟁취하였다.
2006년 7월 세계에 《음악도시》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앙데시에서 진행된 제11차 카네티국제음악축전에서는 문경진의 바이올린독주회가 있었는데 높은 기교를 요구하는 바흐,빠가니니,챠이꼽스끼의 곡들을 훌륭히 연주한 1시간 30분의 공연은 대절찬을 받았다.로씨야 챠이꼽스끼명칭 모스크바국립음악대학 교수 이와노브는 조선의 전도유망한 문경진이 높은 실력으로 모두를 감탄시키였다,그가 짧은 기간에 바이올린명수로 자라날수 있은것은 그의 재능을 싹틔워주고 온 세계가 알도록 내세워주신 김정일동지의 은덕에 의한것이라고 말하였다.

◇ 자랑할만 한 《2.16예술상》개인경연 입상자들

은하수관현악단의 젊은 연주가들중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최고급의 예술기량경연무대로 해마다 진행되는 《2.16예술상》개인경연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인재들이 많다.
올해 43살 난 공훈배우 김영범은 재능있는 호른연주가로서 2005년 《2.16예술상》개인경연에서 1등을 쟁취하였다.클라리네트연주가인 공훈배우 전영수도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을 졸업하고 1998년 제8차 《2.16예술상》개인경연에서 1등의 영예를 지니였다.
지난해 7월 공훈배우칭호를 받은 바이올린연주가 정선영도 25살 되던 2004년 제14차 경연에서 2등을 한 전적을 가지고있고 매력있는 플류트연주가 리정희는 2008년 제18차 경연에서 1등을 하였다.
올해 25살의 동갑나이인 소해금연주가 남은하와 가야금연주가 조옥주는 2007년과 2008년의 《2.16예술상》개인경연들에서 1등으로 입상한 전도유망한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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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범, 전영수, 정선영, 리정희, 남은하, 조옥주

본사기자 조혁철



「労働新聞」 主体101(2012)年3月16日金曜日
ウナス管弦楽団の音楽才子ら

◇団長 チャン・ジョイ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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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中の人民に愛されるウナス管弦楽団の団長は金日成賞桂冠人であり、人民芸術家であるチャン・ジョイルだ。
今年60歳になる彼は、我が国の音楽芸術界にて知られた貫禄のある作曲家らの内の一人だ。1980年に金元均名称平壌音楽大学(当時の平壌音楽舞踊大学)を卒業した彼は様々な芸術団体において創造活動をし、1994年より映画及び放送音楽団(当時)の作曲家として働いた。
2008年、歌謡「雪が降る」を管弦楽と合唱形式の新世紀の名作として創作形象することにより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チャン・ジョイルは、万寿台芸術団の作曲家として「可愛い子」、「若き機関士」のような人民に愛される歌を管弦楽として立派に編曲形象し、1950年代に創作された典型的な朝鮮民謡「ぶらんこに乗った乙女」も民族音楽の特色と情緒に溢れる管弦楽として完成させた。
彼は去る2011年7月27日に発表された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最高人民会議常任委員会政令により、金日成賞を授与された。

◇30代の錚々たる指揮者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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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からリ・ミョンイル、ユン・ボムジュ

ウナス管弦楽団には30代の熱情に満ちた指揮者らがいる。
去年で33歳の若い年で功勲芸術家の称号を担ったリ・ミョンイルは20歳の時に早くも今日の金元均名称平壌音楽大学ピアノ学科を卒業した音楽秀才だ。
オーストリア、ウィーン音楽芸術総合大学にて指揮の勉強をした。彼は主体繊維、ビナロンを発明した世界的な化学者の孫でもある。
ウナス管弦楽団指揮者兼作曲家であるユン・ボムジュは2007年にオーストリア、ウィーン音楽芸術総合大学指揮学科を卒業した。
幼い時から芸術と縁を結び、軍事服務の日々にも音楽的才能を不断に磨いてきた彼は、偉大な将軍様の慈愛深き手の下、ウナス管弦楽団にて才能をぱっと花咲かせている自身の今日に対し、無限なる矜持を抱いている。
錚々たる音楽人材として認められている彼は今年38歳になる。

◇青春楽団の31歳となった楽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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青春楽団と呼ばれるウナス管弦楽団の楽長であるムン・ギョンジンは1981年生まれだ。特出した芸術的功勲を立てた舞台芸術家らに授与される人民俳優称号を、彼は30歳になった去年に受けた。
19歳で今の金元均名称平壌音楽大学を卒業した彼は2002年第12次「2.16芸術賞」個人競演にて2等となった。
ロシア、チャイコフスキー名称モスクワ国立大学にて実習する期間、彼は2005年11月に開かれたパガニーニ名称第3次モスクワ国際コンクールにて2等を獲得した。
2006年7月、世界に「音楽都市」として広く知られるフランスのアンデ市にて開かれた第11次カネッティ国際音楽祝典ではムン・ギョンジンのバイオリン独奏会があり、高い技巧が要求されるバッハ、パガニーニ、チャイコフスキーの曲を立派に演奏した1時間30分の公演は大絶賛を受けた。ロシア、チャイコフスキー名称モスクワ国立音楽大学教授、イワノフは朝鮮の前途有望なムン・ギョンジンが高い実力で皆を感嘆させた、彼が若い期間にバイオリン名手として育てたことは彼の才能を吹き出させて下さり、世界中に知られるように立たせて下さった金正日同志の恩徳によるものだと語った。

◇誇るに値する「2.16芸術賞」個人競演入賞者ら

ウナス管弦楽団の若い演奏家らの中には、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で最高級の芸術技量競演舞台として毎年開かれる「2.16芸術賞」個人競演にて優秀な成績を上げた人材らが多い。
今年43歳となる功勲俳優、キム・ヨンボムは才能あるホルン演奏家として2005年「2.16芸術賞」個人競演にて1等を獲得した。クラリネット演奏家である功勲俳優、チョン・ヨンスも平壌音楽舞踊大学(当時)を卒業し、1998年第8次「2.16芸術賞」個人競演にて1等の名誉を手にした。
去年7月、功勲俳優称号を受けたバイオリン演奏家、チョン・ソンヨンも25歳となった2004年、第14次競演にて2等となった戦績を持っており、魅力あるフルート演奏家、リ・ジョンヒは2008年第18次競演にて1等となった。
今年25歳の同い年である小奚琴演奏家、ナム・ウンハと伽耶琴演奏家、チョ・オクジュは2007年と2008年の「2・16芸術賞」個人競演において1等として入賞した前途有望な俳優ら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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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上から右へ順番にキム・ヨンボム、チョン・ヨンス、チョン・ソンヨン、リ・ソンヒ、ナム・ウンハ、チョ・オクジュ

本社記者 チョ・ヒョクチョル

-参考-

ウナス管弦楽団の音楽才子ら(은하수관현악단의 음악재사들)
労働新聞(로동신문) 2012年3月1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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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らに高く、さらに力強く響き渡る「同志愛の歌」

《로동신문》 주체101(2012)년 2월 4일 토요일
더 높이,더 힘차게 울려퍼지는 《동지애의 노래》

이 땅의 모든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고있는 오늘의 자랑찬 현실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를 가슴뜨겁게 전하여주는 한편의 노래가 있다.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시련의 고비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와도 생사를 같이하리라

기쁠 때에도,슬플 때에도,어려울 때에도 언제나 동지들속에 계시면서 그들과 함께 온갖 시련과 난관을 과감히 뚫고 백승을 떨쳐오신 위대한 김 정 일동지의 철의 신념과 의지가 빛발치는 《동지애의 노래》,
새길수록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을 굳게 믿으시고 선군혁명승리의 천만리길을 헤쳐오시며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수 없는 일심단결의 대부대를 키우신 우리 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으로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 정 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혁명영화 〈조선의 별〉의 주제가 〈동지애의 노래〉의 가사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는 혁명의 길이 순탄한 길이 아니라 준엄한 시련의 길이며 그 길은 어떤 난관이 앞을 막아도 반드시 뚫고나가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져있습니다.》
동지들사이의 사랑이 곧 단결이며 동지애가 진실하고 뜨거울수록 일심단결이 더욱 순결하고 공고해진다!
이런 신조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혁명활동의 매 걸음걸음,순간순간을 위대한 동지애로 수놓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주체87(1998)년 9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당시)의 공연을 보아주시였는데 그때 공연무대에는 《동지애의 노래》도 올랐다.
깊은 감흥속에 노래를 듣고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동지애의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혁명은 동지적단결로부터 시작된다는 심원한 진리를 안겨주는 명곡이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헤치며 선군혁명령도의 거룩한 자욱을 새겨가시는 우리 장군님의 심장에 차넘친것은 이렇듯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리는 숭고한 동지애였다.
인민군군인들을 나의 아들딸들이라고 정을 담아 부르시며 최전연초소들을 찾으시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것을 해놓아야 하겠는데 시간이 한초한초 흐르는것이 안타깝다고 하시며 인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다 찾아가시여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 어버이장군님이시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헤쳐가신 선군혁명천만리길은 뜨거운 정과 사랑을 안으시고 혁명동지들을 찾아 수천리 밤길도 서슴없이 나서시는 위대한 동지적사랑과 헌신의 자욱자욱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병사들과 인민들을 끝없이 찾으시여 부어주시는 사랑과 믿음은 수십년전 이역만리 오두막에서 사랑하는 전우에게 믿음의 친필을 남기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사랑,그 믿음그대로였다.
어버이장군님께서 위험천만한 판문점초소와 풍랑사나운 초도 그리고 험준한 오성산에까지 찾아가신것은 바로 거기에 령도자와 사상과 뜻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하는 참된 전우들,혁명동지들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처럼 험한 길을 헤쳐오신 자신의 로고는 다 묻어두시고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병사들과 인민들을 한품에 안아 기념사진도 찍어주시던 어버이장군님,
가시는 곳마다에서 증기가 뽀얀 취사장에 성큼 들어서시여 음식의 맛도 헤아려보시고 살림집에 들리시여서는 방바닥도 스스럼없이 짚어보시며 따뜻한 사랑을 가득 부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은 진정 령도자이시기 전에 우리모두의 자애로운 친어버이이시였다.
자신의 천만로고에 대하여서는 전혀 생각지 않으시고 오로지 조국과 인민만을 마음에 안고 초강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기에 그이의 심중에서는 언제나 《동지애의 노래》가 울리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도 천만의 심장을 울려주고있다.
동지들이 있기에 김 정 일이도 있고 동지들이 없으면 김 정 일이도 없다는것이 나의 사상적신조이며 나는 곧 그대이고 그대는 곧 나라는 동지에 대한 믿음,이것이 나의 동지관입니다.내가 《동지애의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는것도 동지를 귀중히 여기기때문입니다.《동지애의 노래》는 수령에 대한 흠모와 혁명동지에 대한 사랑을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노래하고있습니다.이 노래의 가사가운데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라는 구절이 제일 좋습니다.이 대목에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동요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혁명의 수령앞에 다진 맹세를 변함없이 지켜싸워야 한다는 사상이 담겨져있습니다.…
천만대적앞에서는 멸적의 령장으로 위엄떨치지만 동지들을 위해서는 정도 깊고 눈물도 많으시던 위대한 인간,위대한 동지이신 우리 장군님을 떠나 고난의 행군,강행군이 승리적으로 돌파되고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고있는 내 나라,내 조국의 오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수 있겠는가.
일심단결의 기초이며 우리 당의 정신력,우리 혁명의 추진력인 혁명적동지애의 고귀한 전통,그것은 오늘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를 모시여 더욱 굳건히 이어지고있다.
어버이장군님의 이민위천의 뜻을 그대로 안으시고 인민을 위한 뜨거운 사랑의 화폭을 수놓으시는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의 모습에서,새해 첫날 인민군부대를 찾으시여 군인들과 손을 굳게 잡으시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신 그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백두산위인들의 숭고한 동지애의 세계를 다시금 가슴뜨겁게 절감하였다.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그이는 정녕 어버이수령님과 우리 장군님과 꼭같으신 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시다.
경애하는 김 정 은동지의 령도따라 나아가는 성스러운 투쟁의 길에 《동지애의 노래》가 끝없이 울려퍼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


본사기자 백영미



「労働新聞」 主体101(2012)年2月4日土曜日
さらに高く、さらに力強く響き渡る「同志愛の歌」

この地の全ての勝利が如何にして成し遂げられたのかを、強盛復興の全盛期が広げられている今日の誉れ満つ現実が如何にして設けられたのかを胸に熱く伝えてくれる一片の歌がある。

往く途険しくとも、試練の峠を越えん。
炎の風吹き荒ぶとも、生死を共にせん。

嬉しい時にも、悲しい時にも、困難な時にも、何時も同志の中におられ、彼らと共に全ての試練と難関を果敢に貫き、百勝を轟かして来られた偉大な金正日同志の鉄の信念と意志が光を放つ「同志愛の歌」、
記せば記すほど、革命同志と人民を堅く信じられ、先軍革命勝利の千万里の道を押し分けて来られ、何を以てしても砕くことの出来ない一心団結の大部隊を育てられた我らの将軍様に対する敬慕の心で迸る激情を禁じ得ない。
偉大な領導者、金正日同志は次のように指摘なされた。
「革命映画"朝鮮の星"の主題歌"同志愛の歌"の歌詞に雨来たれど、雪来たれど、往かねばならぬ革命の途に、固めし誓い、変えずにいよう。という句節がありますが、ここには革命の途が平坦な途ではなく峻厳な試練の途であり、その途は如何なる難関が前を遮っても必ず貫いて進ま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哲学が込められています。」
同志間の愛が、すなわち団結であり同志愛が真実であり熱ければ熱いほど一心団結がさらに純潔で強固なものとなる!
このような信条で心臓を滾らされ、革命活動たびに一歩一歩、瞬間瞬間を偉大な同志愛で紡がれた我らの将軍様であられた。
主体87(1998)年9月のある日のことだった。
この日、将軍様は朝鮮人民軍協奏団功勲合唱団(当時)の公演をご覧になられ、その時、公演の舞台には「同志愛の歌」も上がった。
深い感興の中に歌を聴き終えられた偉大な将軍様は活動家らに「同志愛の歌」は聴けば聴くほど革命は同志的団結より始まるという深遠な真理を抱かせてくれる名曲だと意義深きお話をなされた。
歴史上、その類例を探すことのできない苦難と試練を掻き分け、先軍革命領導の神々しい跡を刻んでゆかれる我らの将軍様の心臓に溢れるものは、こんなにも人々の心琴に熱く響く崇高な同志愛であった。
人民軍軍人らを我が子らであると情を込めて呼ばれ、各最前縁哨所を訪ねられ、世に一番良き我が人民の為に、さらに多いこと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時間の一秒一秒流れることが歯痒いと仰り、人民のいる場所ならばどこであれ全て訪ねて行かれ、天の如き愛と信頼を抱かせて下さった父なる将軍様であられた。
我らの将軍様が押し分けて来られた先軍革命千万里の途は熱い情と愛を抱かれ、革命同志らを訪ね、数千里の夜道も躊躇わず進み出られる偉大な同志的愛と献身の跡の数々であった。
偉大な将軍様が兵士らと人民を終わりなく訪ねられ、注いで下さる愛と信頼は数十年前、万里の異国にある苫屋で愛する戦友らに信頼の親筆を残された父なる首領様のその愛、その信頼のそのままであった。
父なる将軍様が危険千万な板門店哨所と風浪激しき哨所、そして険しくも高き五聖山にまで訪ねて行かれたことは、まさにそこに領導者と思想と志を共にし、運命を共にする真なる戦友ら、革命同志らがあったためであった。
そのように険しい道を掻き分けて来られた自身の労苦は全て隠され、微笑みをたたえられ、兵士らと人民を一つの懐に抱かれ、記念写真も撮って下さった父なる将軍様、
行かれる所ごとに蒸気の立ち込める炊事場にかつかつと入られ、食べ物の味もみられ、住宅に入られては部屋の床にも気兼ねなく手を当ててみられ、暖かい愛をいっぱいに注がれた偉大な将軍様は真の領導者であられる前に、我ら皆の慈しみ深き実の父であられた。
自身の千万労苦に対しては全く考えられずにひたすら祖国と人民だけを心に抱き、超強度強行軍の道を継いで行かれた敬愛する将軍様であられたために、彼の心の中にはいつも「同志愛の歌」が響いていたのだ。
何時であったか、偉大な将軍様が仰られたお言葉が今日も千万の心臓を響かせてくれている。
同志らが居るからこそ金正日が居て、同志らが居なければ金正日も居ないということが私の思想的信条であり、私はまさに君であり、君はまさに私であるという同志に対する信頼、これが私の同志観です。私が「同志愛の歌」を特別に好きであることも同志を大切に思うからです。「同志愛の歌」は首領に対する敬慕と革命同志に対する愛を哲学的に深く歌っています。この歌の歌詞の中の雨来たれど、雪来たれど、往かねばならぬ革命の途に、固めし誓い、変えずにいよう。一つなる星を仰ぎ見る。という句節が一番好きです。この部分から如何なる試練が迫って来ても動揺することや躊躇せずに革命の首領の前に固めた誓いを変わることなく守り戦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思想が込められている。
千万大敵の前には滅敵の霊将として威厳を轟かすが、同志の為には情も深く涙も多い偉大な人間、偉大な同志であられた我らの将軍様を離れ、苦難の行軍、強行軍が勝利として突破し、強盛復興の全盛期が広げられている我が国、我が祖国の今日に対しどのように考えることができようか。
一心団結の基礎であり、我が党の精神力、我らの革命の推進力である革命的同志愛の高貴な伝統、それは今日、敬愛する金正恩同志を仰ぎ、さらに堅固に受け継がれている。
父なる将軍様の以民為天の志をそのまま抱かれ、人民の為の熱い愛の画幅を紡がれる敬愛する金正恩同志の姿より、新年の初日、人民軍部隊を訪ねられ、軍人らと手を堅く握られ、意義深く記念写真を撮られた彼の姿から我らは白頭山偉人らの崇高な同志愛の世界を再び胸に熱く切に感じた。
敬愛する金正恩同志、彼は間違いなく、父なる首領様と我らの将軍様と全く同じであられる同志愛の最高化身であられた。
敬愛する金正恩同志の領導に従い進み往く聖なる闘争の道に「同志愛の歌」が果てなく響き渡る。

雨来たれど、雪来たれど、往かねばならぬ革命の途に、
固めし誓い、変えずにいよう。一つなる星を仰ぎ見る。


本社記者 パク・ヨンミ

-参考-

さらに高く、さらに力強く響き渡る「同志愛の歌」(더 높이,더 힘차게 울려퍼지는 《동지애의 노래》)
労働新聞(로동신문) 2012年2月4日

同志愛の歌
革命音楽館(※当サイ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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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紀を継ぎ響き渡る一つの星(ハンビョル)の歌

《로동신문》 주체100(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세기를 이어 울리는 한별의 노래

《ㅌ.ㄷ》결성 85돐!
력사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그 뜻깊은 날을 계기로 무엇을 중시하고 어디에 더 큰 힘을 넣을것인가.
각급 당조직들과 당일군들은 스스로 이런 지향과 목표를 내걸고 해당한 조직정치사업을 짜고들어 진행하였다.
그중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령도의 중심으로 받들어모시고 혁명의 폭풍우를 굴함없이 헤쳐나간 《ㅌ.ㄷ》성원들의 고결한 충정을 본받도록 하기 위한 교양사업에 특별한 관심이 돌려졌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당조직들은 모든 교양사업을 충실성교양과 밀접히 결부시켜 진행하여 사상교양사업이 곧 충실성교양으로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며칠전 만수대지구건설에 동원된 어느 한 중앙기관의 건설자들이 맡은 살림집건설을 일정대로 내밀기 위하여 또 한밤을 지새워가며 불꽃튀는 전투를 벌리고있었다.내려가 잠시라도 눈을 붙이라고 등을 떠밀어도 누구 하나 고층살림집꼭대기에 있는 작업장을 뜨려고 하지 않았다.쉴새없이 놀리는 일손들,멈출줄 모르는 용접의 불꽃들은 《ㅌ.ㄷ》결성 85돐을 맞으며 어머니당에 보다 큰 로력적선물을 마련해드리려는 건설자들의 드높은 열의를 잘 말해주고있었다.
현장에서 그들과 어울려 일하면서 이것을 가슴후덥게 느낀 그 단위의 당일군은 작업의 쉴참에 그들의 심리에 맞게 정치사업을 능란하게 벌리였다.
그는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영생의 모습으로 빛나는 《ㅌ.ㄷ》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면서 말하였다.

《동무들도 혁명력사학습을 통해 잘 알다싶이 〈ㅌ.ㄷ〉성원들은 위대한 한별동지를 혁명의 령도자로 모신 긍지에 넘쳐 밤잠도 휴식도 잊고 때로는 죽음도 무릅쓰며 얼마나 불같이 투쟁하였소.오늘 경애하는 장군님께 하루빨리 완공의 보고를 올리기 위해 온갖 열정을 다 바쳐가는 우리들이기에 그들앞에 누구보다 부끄럼없으리라고 생각하오.》

어느결에 《ㅌ.ㄷ》성원들에 대한 추억으로 건설자들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린 당일군은 모두에게 뜻있는 눈길을 보내며 예술영화 《조선의 별》에서 나오는 노래를 조용히 불렀다.

새 세기의 빛나는 한별 용사들을 부른다
혁명의 주인은 인민 대중의 힘은 무한타
겨레의 삶을 위해 인간의 존엄을 위해
력사의 닻을 올렸다
한별 한별 한별 만세


건설자들도 따라불렀다.노래는 삽시에 합창으로 번져졌다.잠 못 드는 수도의 밤하늘을 흔들며 울려퍼지는 그 노래는 세월은 멀리 흘러갔어도 《ㅌ.ㄷ》성원들이 지니였던 수뇌부결사옹위정신을 그대로 지니고 오늘의 대고조격전을 힘있게 다그쳐갈 불굴의 기개가 누구에게나 넘쳐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건설자들은 《ㅌ.ㄷ》결성 85돐까지 해제끼기로 예견하였던 일정계획을 앞당겨 수행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수령과 전사,령도자와 인민이 사상의지적으로뿐만아니라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친 힘보다 더 큰 힘은 이 세상에 없다.
만수대지구건설에 동원된 단위 당조직들에서는 어디에서나 《ㅌ.ㄷ》결성 85돐을 맞으며 건설자들의 가슴을 수령복,장군복으로 뜨겁게 달구어주기 위한 정치사업을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벌리였다.
재령군 삼지강리당위원회를 비롯한 황해남도안의 당조직들에서는 당일군들이 농업근로자들속에 들어가 우리 혁명의 첫 기슭에서 한별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된 《ㅌ.ㄷ》성원들의 넋을 이어 나라의 쌀독을 가득 채우기 위한 오늘의 가을걷이전투에서 누구나 이름난 혁신자,위훈자가 되도록 하기 위한 교양사업을 심도있게 벌려나갔다.
개천지구탄광련합기업소 당위원회,덕천지구탄광련합기업소 당위원회를 비롯한 석탄공업부문의 당조직들과 전력공업,철도운수부문 당조직들에서는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ㅌ.ㄷ》성원들의 불굴의 넋을 이어 당이 맡겨준 과업을 기어이 수행하고야마는 결사관철의 투쟁기풍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들을 참신하게 벌려나갔다.
2.8비날론련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당 일군들은 현지지도사적을 통한 교양,노래보급,문답식학습경연,읽은책발표모임 등 다양한 사업들을 통하여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대를 이어 누리는 수령복,장군복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생산에서 보다 큰 앙양을 일으켜나가도록 하였다.
세기를 이어 울리는 한별의 노래!
여기에는 우리 혁명의 천하지대본인 일심단결을 억척같이 다져나가며 영원한 승리와 영광의 표대인 수령결사옹위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위업,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려는 천만군민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가 비껴있다.

본사기자 리정수



「労働新聞」 主体100(2011)年10月19日水曜日
世紀を継ぎ響き渡る一つの星(ハンビョル)の歌

「トゥ・ドゥ」結成85周年!
歴史の追憶を呼び起こすその意義深き日を契機に何を重視し、どこへさらに大きな力を込めるのか。
各級党組織と党活動家達は自らそのような指向と目標を掲げ取り組んだ組織政治事業を組み立て進行した。
その中でも偉大なる首領様を団結の中心、領導の中心と戴き仰ぎ、革命の暴風雨を屈することなく掻き分け進む「トゥ・ドゥ」成員らの高潔な忠心を手本とする為の教養事業に特別な関心を寄せた。
偉大なる領導者、金正日同志は、次のようにご指摘なさった。

「各党組織と全ての教養事業を忠実性教養と密接に結びつけ進行させ、思想教養事業がただちに忠実性教養へとな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数日前、万寿台地区建設に動員されたある一中央機関の建設者らが引き受けた住宅建設を日程どおりに完成させる為にさらに一夜を明かし火花の散る戦闘を繰り広げていた。少しの間仮眠をとるなどを抜いても一人たりとも高層住宅のてっぺんにある作業場を退こうとはしなかった。休むことなく手を動かす働き手、止むことを知らぬ溶接の火花の数々は「トゥ・ドゥ」結成85周年を迎え、母なる党にさらに大きな労力的な贈り物を備え、捧げようとする建設者らの高く高い熱意をよく伝えてくれていた。
現場にて彼らに交じり働き、これを胸に頼もしく感じたその単位の党活動家達は作業の休憩時間に彼らの心理に合うよう政治事業を手馴れたように繰り広げた。
彼は大城山革命烈士陵に永生の姿と輝く「トゥ・ドゥ」成員らに対する物語を話題に上げ語った。

「同務たちも革命歴史学習を通じよく知っているように、「トゥ・ドゥ」成員たちは偉大なる一つの星(ハンビョル)同志を革命の領導者と仰く矜持に満ち、夜に眠ることも休むことも忘れ、時には死も顧みず、どれほど炎の如く闘争したのでしょうか。今日、敬愛する将軍様に一日も早く完工の報告を差し上げる為にあらゆる熱情を全て捧げゆく我らであるからこそ、彼らを前にしても誰よりも恥ずかしくないと考えます。」

いつの間にか「トゥ・ドゥ」成員らに対する追憶で建設者らの胸は熱くなった。
彼らの心情を察した党活動家は、皆に思いを込めた視線を送り、芸術映画「朝鮮の星」に出てくる歌を静かに口ずさんだ。

新しき世紀に輝く一つの星(ハンビョル)、勇士達を呼び招く。
革命の主人は人民、大衆の力は無限なり。
民族の生の為に、人間の尊厳の為に、
歴史の錨は上げられた。
一つの星、一つの星、一つの星万歳。


建設者らも続いて歌った。歌はすぐに合唱となり広がった。眠れぬ首都の夜空を揺り動かし響き渡るその歌は、歳月は遠く流れて行っても「トゥ・ドゥ」成員らが背負った首脳部決死守護精神をそのまま背負い、今日の大高潮激戦を力強く拍車をかけ進む不屈の気概が誰もに満ち渡らせた。
そして建設者たちは「トゥ・ドゥ」結成85周年まで、予想されていた完成の日程計画を前倒しして遂行する奇跡を創造した。
首領と戦士、領導者と人民が思想意志的にというだけでなく、道徳義理的にも堅く団結した力よりさらに大きな力はこの世にない。
万寿台地区建設に動員された単位、党組織ではどこでも「トゥ・ドゥ」結成85周年を迎え、建設者らの胸を首領福、将軍福を以て熱く温めてくれる為の政治事業を多用な形式と方法で広げた。
載寧郡サムジガン里党委員会を始めとする黄海南道内の各党組織では、党活動家らが農業勤労者らの中へ帰り、我らの革命の始めの麓で一つの星(ハンビョル)の歌を高く歌い、その身がそのまま肉弾となった「トゥ・ドゥ」成員らの魂を継ぎ、国の米櫃を一杯に満たす為の今日の秋収穫闘争において、誰であれ名高き革新者、偉勲者となるようにする為の教養事業を深く広げていった。
价川地溝炭鉱連合企業所党委員会、徳川地溝炭鉱連合企業所党委員会を始めとする石炭工業部門の各党組織と電力工業、鉄道運輸部門各党組織では、活動家らと党員らと勤労者らが「トゥ・ドゥ」成員らの不屈の魂を継ぎ、党が任せてくれた課業を必ず遂行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決死貫徹の闘争気風を発揮するようにする為の思想教養事業の数々を斬新に広げていった。
2.8ビナロン連合企業所と南興青年化学連合企業所の党活動家らは、現地指導事績を通じた教養、歌の普及、問答式学習競演、読んだ本を発表する会等、多様な事業の数々を通じて活動家らと従業員らが代を継ぎ享受する首領福、将軍福を胸に深く抱き、より大きな高揚を起こしていくようにした。
世紀を継ぎ響き渡る一つの星(ハンビョル)の歌!
ここには我が革命の天下之大本たる一心団結を根強く堅めて行き、永遠なる勝利と栄光の基たる首領決死守護の旗標を高く掲げ、白頭より開拓された我が革命偉業、主体の先軍革命偉業を最後まで完成させ進もうとする千万軍民の鉄石の信念と意志が射し込んでいる。

本社記者 リ・ジョンス

-参考-

世紀を継ぎ響き渡る一つの星(ハンビョル)の歌(세기를 이어 울리는 한별의 노래)
労働新聞(로동신문) 2011年10月19日

革命の主人は我等人民
革命音楽館(※当サイ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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