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革命音楽館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울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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限りなく大きな度量と高邁な風貌に魅せられて

주체104(2015)년 5월 3일 로동신문

한없이 넓은 도량과 고매한 풍모에 매혹되여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조선혁명뿐아니라 세계혁명앞에 쌓으신 불멸의 공적으로 하여 세계가 한결같이 공인하는 희세의 정치원로,인류의 대성인이시다.
절세의 위인에 대한 칭송의 목소리는 이 행성을 진감시킨다.
우리 나라와 국교관계가 없는 일본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매혹과 흠모의 목소리가 끝없이 울려나왔다.
인류자주위업과 조일관계개선에 불면불휴의 로고를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일본 각계의 수많은 인사들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뜨거운 감회속에 되새겨본다.

소탈한 인품과 다심한 인정에 끌리여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해방직후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접견하여주신 일본의 정계,사회계,언론계,개별인사들은 1 000여명을 헤아린다.우리 수령님께서 해방직후 제일 처음으로 만나주신 일본의 인사들중에는 노사까 산조도 있다.
노사까 산조는 일본공산당 대표로서 오래동안 국제공산당에 파견되여 사업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중국 연안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위해 적극 투쟁한 사람이였다.
그가 우리 나라에 온것은 해방직후였다.해방의 기쁨안고 모두가 떨쳐나 건국열의로 들끓는 조선인민의 투쟁모습에서 그가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커다란 감동속에 노사까 산조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은 력사의 그날은 주체34(1945)년12월 21일이였다.
그는 우리 수령님을 일제의 100만대군과 맞서싸우신 명성높은 장군으로 높이 칭송하며 그이께 인사를 올리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분한 평가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위하여 굴함없이 싸워온 노사까 산조를 비롯한 일본인사들의 투쟁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앞으로 일본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조일량국 인민들간의 친선관계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공산당을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대중적당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그의 결심도 적극 지지해주시였다.자기 나라로 무사히 귀국할수 있도록 해당한 조치도 취해주시고 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도 하나하나 헤아려주시는 김일성장군님의 소탈한 인품과 다심한 인정에 끌리여 노사까 산조는 우리 수령님앞에서 다진 맹세대로 한생을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반대하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투쟁하였을뿐아니라 재일조선인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옹호하는 련대성운동을 적극 벌리였다.

천금같은 귀중한 시간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해방직후 새 조선건설의 그 바쁘신 속에서 만나주신 일본의 인사들중에는 일조농업기술교류협회 회장이였던 가네가쯔 노보루도 있다.
강도 일제가 패망한 뒤 우리 나라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남아있었다.
일본에서는 이들의 귀환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사회단체들과 인사들의 운동이 진행되고있었다.당시 《재외부형구출학생동맹》의 한 성원이였던 가네가쯔는 이 귀환운동에 참가하면서 점차 조선에 가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자기의 소청을 말씀드릴 용단까지 내리게 되였다.그가 이러한 용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마음속고민이 컸다.조선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씻을수 없는 원한만을 남긴 과거 일제의 죄행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그였기때문이다.조선에서 자기의 소청이 이루어지겠는지,더우기 백두산의 호랑이로 명성을 떨치신 김일성장군께서 자기를 어떻게 대해주실가 하는 위구심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간난신고하여 38˚선을 넘어온 가네가쯔는 큰 충격을 받았다.해방직후 우리 나라에서 일본인들에게 식량을 공급해주고있는 사실을 목격하였기때문이다.
그가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온 그날은 주체35(1946)년 6월 3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렵고 복잡한 시기에 일본에서 먼길을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고 그를 따뜻이 위로해주시며 그의 소청을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안고있는 위구심도 풀어주시며 조선인민은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악독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일본제국주의통치배를 반대하지 결코 일본인민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일깨워주시였다.그러시면서 우리 인민은 재일동포들의 귀국을 실현하지 못한 불행을 안고있는것만큼 북반부지역에 남아있는 일본인들의 고통을 리해하고있으며 그들의 귀국실현을 도와주려고 한다는데 대하여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가네가쯔가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온 시간은 불과 15분가량이였다.그러나 그에게는 이 시간이 천금같은 귀중한 시간으로 되였다.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그는 저도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머금으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격정을 터치였다.
(어쩌면 인품이 그처럼 높으실가.어쩌면 그리도 따뜻하실가.)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가네가쯔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은 그후 수많은 일본인들의 귀환이 시작되고 자기가 일본으로 무사히 귀국할수 있도록 온갖 조치가 취해지는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무한대한 포옹력,고매한 풍모와 높은 덕망에 매혹된 가네가쯔는 우리 수령님의 접견을 받은 후부터 사상과 정견을 초월하여 조선인민의 투쟁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으로 되였으며 일조농업기술교류협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조일관계개선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본사기자 김철룡



主体104(2015)年5月3日 労働新聞
限りなく大きな度量と高邁な風貌に魅せられて

偉大な金日成同志は朝鮮革命のみならず、世界革命の前に積まれた不滅の功績によって世界が一様に公認する稀世の政治元老、人類の大聖人であられる。
絶世の偉人に対する賞賛の声はこの惑星を震撼させる。
我が国と国交関係がない日本においても、偉大な首領様に魅せられた者の敬慕の声が途切れることなく鳴り響いた。
人類自主偉業と朝日関係改善に不眠不休の労苦を全て捧げられた偉大な首領様に対する日本各界の数多き人士らの果てしない欽慕の情について熱く感懐を刻んでみる。

気さくな人柄とあまりある人情に惹かれて

偉大な金日成同志が解放直後より生涯の最後まで接見なさった日本の政界、社会界、言論界、個別人士らは1000余名を数える。我が首領様が解放直後、一番初めにお会いになった日本の人士らの中には野坂参三もいる。
野坂参三は日本共産党代表として長らく国際共産党に派遣されて事業を進め、第二次世界大戦時期には中国延安において戦争に反対し、平和の為に積極的に闘争した人であった。
彼が我が国に来たのは解放直後であった。解放の喜びを抱いてみなが勇み出て、建国の熱意に沸く朝鮮人民の闘争する姿から彼が受けた衝撃は非常に大きかった。
大きな感動のうちに野坂参三が偉大な首領様にお会いし、教えを受けた歴史のその日は主体34(1945)年12月21日であった。
彼は我が首領様を日帝の百万大軍に向かって戦われた名声高き将軍として高く称賛しながら、首領様にあいさつを捧げた。偉大な首領様は身に余る評価だと謙遜しながらお話になりながら、戦争に反対し平和の為に屈することなく戦ってきた野坂参三を始めとする日本人士らの闘争を高く評価なさった。そうおっしゃりながら、首領様はこれから日本の民主化を実現し、朝日両国人民の親善関係発展の為に努力し、共産党を国と人民の為に服務する大衆的党として発展させてゆくという彼の決心も積極的に支持なさった。自国へと無事に帰国できるよう相応の措置も施され、事業より提起される問題もみて下さる金日成将軍様の気さくな人柄とあまりある人情に惹かれ、野坂参三は我が首領様に立てた誓いの通り、一生を米帝の新たな戦争挑発策動に反対し、世界の平和を守護する為に闘争しただけでなく、在日朝鮮人らの民主主義的民族権利を擁護する連帯性運動を積極的に繰り広げた。

千金のような貴重な時間

偉大な金日成同志が解放直後、新朝鮮建設のお忙しいなかお会いになった日本の人士らの中には日朝農業技術交流協会会長であったカネガツ・ノボルもいる。
強盗日帝が敗亡した後、我が国には多くの日本人らが残っていた。
日本では彼らの帰還を実現する為、あらゆる社会団体と人士らの運動が行われていた。当時「在外父兄救出学生同盟」の一成員であったカネガツはこの帰還運動に参加しながら、次第に朝鮮に行き、金日成将軍様にお会いして、自分の訴願を申し上げる勇断下すようにまでなった。彼がこのような勇断を下す前までは悩みがあった。朝鮮人民に推し量ることのできない不幸と拭いさることのできない恨みだけを残した過去の日帝の罪業に対しよく知っている彼だからであった。朝鮮で自分の訴願が実現するのだろうか、また白頭山の虎として名声を轟かされた金日成将軍様が自分をどう応じてくださるだろうか、という疑念が彼の頭から離れなかった。
艱難辛苦を経て38度線を越えてきたカネガツは大きな衝撃を受けた。解放直後、我が国において日本人らに食糧を配給している事実を目撃したからであった。
彼が金日成将軍様に直接お会いしたその日は主体35(1946)年6月3日であった。
偉大な首領様は難しく複雑な時期に日本から遠い道を来て苦労しただろうと、彼をあたたかく慰労してくださり、彼の訴願を最後まで全て聞いて下さった。偉大な首領様は彼が抱いている疑念も解いて下さり、朝鮮人民は我が国を強占し、悪徳な植民地統治を実施した日本帝国主義統治輩を反対するのであって、決して日本人民自体に反対するのではないと諭して下さった。そうおっしゃりながら、我が人民は在日同胞の帰国を実現できなかった不幸を抱いているだけに、北半部地域に残っている日本人らの苦痛を理解しており、彼らの帰国実現を助けようとしていることについて熱くお話になった。
カネガツは金日成将軍様にお会いした時間はわずか15分程であった。しかし彼にとってはこの時間は千金のような貴重な時間となった。
金日成将軍様にお会いして、彼は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熱い涙を浮かべながら心の中でこのように激情を燃やした。
「どうして人柄があの方のように素晴らしくなるのだろう。どうしてあれほどまでに暖かくなるのだろう。」
父なる首領様に対するカネガツの限りなき欽慕の情はその後、数多くの日本人らの帰還が始まり、自分が日本に無事に帰国できるようにあらゆる措置が施されるのを直接体験しながら絶頂に達した。
父なる首領様の限りなく大きな度量と無限大の包容力、高邁な風貌と高い徳望に魅せられたカネガツは我が首領様の接見を受けてからというもの、思想と政見を超越して朝鮮人民の闘争を熱烈に支持する人になり、日朝農業技術交流協会会長として働きながら、朝日関係改善の為、己の全てを捧げたのであった。

本社記者 キム・チョルリョン

-参考-

限りなく大きな度量と高邁な風貌に魅せられて(한없이 넓은 도량과 고매한 풍모에 매혹되여)
労働新聞(로동신문) 2015年5月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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